기획특집

하느님 사랑 만끽하는 우리 “고통은 치유로, 절망은 희망으로”

박효주
입력일 2025-04-29 11:16:06 수정일 2025-04-29 11:16:06 발행일 2025-05-04 제 344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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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주일 르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마뗄암재단 암 환자 무료 피정 ‘희망의 꽃’
암 환자 마음의 상처·갈등 봉합하며 주님과 함께하는 휴식으로 위로 받아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마뗄암재단(사무국장 이영숙 베드로 수녀, 이하 재단)은 암 환자를 위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허가받은 국내 유일의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암 자체의 치료보다 병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가정의 갈등과 환자 내면의 상처 치유를 위해 설립됐다. 재단이 연 18회 시행하는 암 환자 무료 피정 ‘희망의 꽃’이 강화도 마뗄 쉼터에서 열렸다. 부활 제3주일이자 생명 주일을 맞아 방문한 마뗄 쉼터는 그 어느 곳보다 생명력과 사랑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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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마뗄암재단의 암 환자 무료 피정 ‘희망의 꽃’ 참가자들과 김옥녀 실장(맨 오른쪽)이 석모도에서 갯벌 체험을 하고 있다. 박효주 기자

“며칠이라도 자연에서 쉬고 싶다”

인천 강화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 갯벌 앞에 갈매기 떼가 모여들었다. 새들을 향해 과자를 들고 ‘까르르’ 소녀처럼 웃는 한 무리는 ‘희망의 꽃’ 프로그램 중 자연 피정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암 환자들이다. 한바탕 갈매기 먹이 주기가 끝나자 열 명 남짓한 참가자들은 중력이 분산되는 사뿐함을 느끼며 고운 갯벌 위를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부드러운 진흙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자연의 선물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을 터트렸다.

하늘이 선사하는 아름다움 속에서 참가자들이 허심탄회하게 “갯벌엔 아이 숙제하러나 와봤지, 온전히 내가 즐기기 위해서는 처음”이라든가 “내 아픔을 남편이 이해 못해 서운하다”는 말을 나누며 여유롭게 십여 분 발걸음을 옮기자 드디어 찰랑이는 파도가 보였다. 바닷물을 발로 차기도 하고 진흙으로 범벅이 된 발을 맞대며 화기애애 사진을 찍은 참가자들은 이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이들은 다음 장소인 온천 터로 자리를 옮겨 뜨뜻한 해수에 발을 담그고 뻥튀기와 음료를 나누며 힐링의 시간을 만끽했다. 족욕이 끝나고 들른 카페에서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운 뒤 귀가한 마뗄 쉼터에는 영양 만점 보쌈과 몇 시간이나 정성 들여 끓인 뽀얀 들깻국이 반기고 있었다.

자신도 33세에 암 투병 생활을 했고, 공식적으로만 2000명 이상의 임종을 지킨 이영숙 수녀는 “많은 암 환자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며칠만이라도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서 마음 편안하고 자유롭게 쉬고 싶다’고 대답한다”며 “비록 길지 않지만 대지 속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을 통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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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강화도 마뗄 쉼터 경당에서 암 환자 무료 피정 ‘희망의 꽃’ 참가자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이영숙 수녀. 박효주 기자

암 치료해주니 자살 시도로 실려와

“암 치료 지원금도 주고 지극정성을 쏟아 겨우 살려놨더니, 완치 판정을 받고도 자살 시도를 해 병원에 다시 실려 오는 환자들이 있었어요. 육체적 치료뿐 아니라 내면 치유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암 환자들은 진단 순간부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치료 과정에서 겪는 고통으로 우울증과 절망에 빠져 죽고 싶다는 충동도 자주 느낀다. 이 수녀는 오랜 투병 과정에서 가족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불행해진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모습을 많이 봤다. 여기에서 받는 마음과 삶의 상처는 의료기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하느님의 사랑만이 치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서서, 환자들이 생명의 고귀함을 재발견하고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전인적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모든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믿기에,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자신의 생명과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강조한 이 수녀는 “이곳에서 환자들이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13년째 재단 실무를 맡고 있는 김옥녀(안젤라) 실장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 환자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기고 단절됐던 관계도 회복해 삶이 변화한다”며 “이곳에 오신 분들이 ‘내가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기도와 정성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뗄 쉼터가 운영하는 환자 피정 ‘희망의 꽃’과, 환자와 가족 등이 머물다 가는 ‘사랑이 핀 쉼터’는 성별·연령·종교 상관없이 활동 가능한 모든 암 환자에게 열려 있다. 무료로 진행하다 보니 재정 부담이 없지 않지만, 다행히 올해는 사랑의 열매 전국단위 신청사업에 선정돼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이뤄지고 있다. 재단은 인근에 말기 암 환자 돌봄 센터 ‘가브리엘라 천사의 집’도 건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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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마뗄암재단 이영숙 수녀(가운데)가 강화도 마뗄 쉼터에서 열린 암 환자 무료 피정 ‘희망의 꽃’ 참가자와 손잡고 기도하고 있다. 박효주 기자

양손 가득 담아가는 하느님 사랑

갑상선암을 13년 전 발견하고 8번의 항암 치료와 후유증, 코로나로 인한 림프 전이 등을 겪은 이병희(그라시아) 씨는 “이곳 수녀님들이 친정엄마 같고, 일하는 모든 분이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대해주셔서 항암 약을 먹으며 생긴 우울감과 불안 장애가 없어졌다”며 “‘여기서 하느님 사랑을 가슴 가득 안고, 등에 지고, 주머니에 담고, 손에 쥐고 그리고 나가서 더 사랑을 베풀라’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2년 전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은 뒤 자연 요법으로 치료 중인 오인숙(체칠리아) 씨는 친언니의 권유로 마뗄 쉼터에 왔다가 34년간의 냉담을 풀었다. 모든 시간이 좋았지만 특히 기도방에서 환자 한 명 한 명과 성심껏 함께 봉헌해준 이영숙 수녀의 기도가 마음을 울렸다. 오 씨는 “앞으로는 서울역 근처 노숙자분들을 위해 봉사를 하며 받은 사랑을 나눌 생각”이라고 밝혔다.

유방암과 갑상선암을 동시에 겪은 조은아(세라피나) 씨는 마뗄 쉼터 방문 일주일 전 세례를 받았다. 조 씨는 “피정에서 서로의 투병 과정과 아픔을 나누는 순간 나만 이런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게 아니란 걸 깨닫고는 불면증 없이 단잠을 잤다”며 “나는 버려진 게 아니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고 기다리셨다는 걸 느끼자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남편이 나에겐 너무 큰 가시”라던 한 환자는 피정 후 “그 가시는 내가 만든 것 같다. 남편에게 따뜻한 밥상 한 번 못 차려준 게 미안하다. 이곳에서 먹은 사랑과 정성의 식사처럼 집에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고백하고 돌아가 달라진 모습을 보였고, 감동한 남편이 마뗄 쉼터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한 적도 있다. 또 한 보호자는 큰 기대 없이 왔던 ‘사랑이 핀 쉼터’에서 말기 암인 남편, 사이가 좋지 않던 자녀와 극적으로 화해해 남편의 여생 3개월을 극진히 돌보다 평안하게 보내기도 했다.

김옥녀 실장은 “아픔과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모든 이의 생명은 끝까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생명의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후원 : 농협 355-0064-3508-93 재단법인 마뗄암재단
※ 정기·일시후원 : https://online.mrm.or.kr/MrX5kTi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