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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10) 교계제도의 기원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01-02-04 수정일 2001-02-04 발행일 2001-02-04 제 2235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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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성장 따른 ‘봉사’가 기원
역동성 사라지고 직무 우월성만 강조되기도
1세기말경 정립 … 6세기까지 여자부제 존속
【터키·그리스=김상재 기자】교회의 초창기 역사를 따라 순례하다 보면 유명한 도시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 도시와 연관한 인물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스미르나의 뽈리까르푸스, 가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 등. 이들은 모두 그 도시의 주교들이었으며 도시의 유명인물들은 대개 교회의 정통성과 선교를 위해 헌신한 주교들이었다.

생각이 여기쯤 미치면 자연히 주교, 신부, 부제로 이루어지는 교계제도가 언제부터 형성됐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교계제도란

교회 초창기에는 성령의 은총이 많은 사람들의 특수한 활동을 통하여 드러났는데 교회 안에서 이러한 직무를 수행한 사람들 중에는 사도, 예언자, 전도사, 목자, 교사, 기적을 행하는 사람, 병을 고치는 사람,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 희사하는 사람등이 있었다.

이 여러 직무 중에는 은사에 의한 직무도 있었고 사도의 권위로 설정된 책임자로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은사에 의한 직무는 직제화 되지않고 자취를 감추지만 교회의 초석인 사도직에 관련된 직무들은 차츰 제도화하여 감독, 장로, 집사 등의 명칭으로 후대에 계승된다.

사도들의 포교활동으로 예루살렘의 교세가 신장하고 교무가 복잡해지자 사도들은 그에따른 새로운 직무들을 '기도와 안수'라는 절차를 통해 맡기기 시작했다.

기도와 안수는 단순한 축복의 의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령의 은총을 주는 것으로 교계제도의 절차 안에 그리스도께서 직접 작용하시고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초대공동체의 성령의 현존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따라서 교직자들에게 부여되는 직무의 은사는 살람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사를 보여주는 성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성서에서 모든 믿는 이들에게 선사된 생동감 넘치는 성령의 현존으로 증언되는 교회직무의 보편성과 역동성이 중세를 거치면서 경직되고 제도화된 직무의 우월성과 절대성만이 전면에 부각돼는 우를 낳기도해 지금까지 성직권위주의 등의 폐해를 낳고있다.

성서상에서 교회공동체 안에 주어진 여러 직무들은 언제나 공동체의 성장과 복음선포에 관련된 것으로 교회공동체를 위한 봉사 직분이었다.

제도의 성립 과정

사도들의 생전에는 사도들의 포교활동으로 중요도시마다 교회가 설립되면서 이들교회에서 사도들을 보필하고 직접 지도할 신앙깊고 덕망있는 유지들을 뽑아 장로단을 결성했다. 그리고 박해가 심해지고 사도들의 죽음이 가까워 오면서 사도들은 복음선포의 계속을 위해 장로들 중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들에게 그곳 교회를 통치하는 감독직을 맡겼다.

사도들의 생존시에는 아직 이런 협력자들을 후계자인 주교로 생각한 것 같지 않지만 1세기말경 요한이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교회에 보낸 서간에서 교회전체를 수신인으로 하지 않고 책임자를 수신인으로 하고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선종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사목적 직권은 각 지방의 교회 감독들에게 위임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사도들의 사목적 권한이 각 지방의 감독들에게 축소 제한돼 전수됐고 또 한편으로는 각 지방 교회를 감독하던 사도들과 직제자들이 사라지면서 장로단의 단장인 감독의 권위가 커지면서 감독들의 사목권한이 상향 확대되기도 했다.

이러한 두경향이 합쳐지면서 지역에 주교가 상주하는 1교회 1주교 제도가 성립되기에 이른다.

주교가 교회 본연의 우두머리로서 교회의 중심점으로 나타나자 장로들은 주교의 신부단을 구성했고 교도직과 사제직에 있어서 주교의 협력자가 돼 본시 주교가 주례하던 미사도 지방에서는 신부가 주례하게 됐고 주교 공석시 주교를 대리하기도 했다.

사도들에게 첫 임명을 받은 교직자(사도행전 6, 1~6)들인 부제들은 원래 사도들의 보조자로서 사도훅 시대에는 주교들의 보조자로 빈민구제, 재산관리 등 교회공동체의 물질적 사무를 관장하고 경신례 때 시중을 드는 것이 주요한 임무였으며 때로는 전도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이미 사도시대(로마 16,1)부터 여집사 즉 여부제들이 활동했으며 6세기까지 존속했었다는 것인데 이들은 일반적으로 부녀자들의 자선사업과 전도 및 세례를 돌보아 주는 임무를 맡았다.

이처럼 부제는 사제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 아니라 독립된 직책이며 초세기 교회에서는 신부들보다 직분은 낮았을지라도 사제들보다 더 큰 영향을 발휘하기도 했다.

주교 관할구역과 교구

초기 그리스도교 단체는 선교의 특성상 도시에 세워졌고 이 단체의 지도자는 주교들이었다. 그러나 교회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교회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기부와 유산 증여 등으로 교회의 소유가 된 개인 집들이 신부들의 거처이자 직무활동의 중심지가 돼 오늘날의 본당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된다.

300년경 로마에는 이러한 교회에 원래 집 주인의 이름을 붙이다 후에 유명한 순교자 혹은 성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이러한 일군의 본당들이 교회의 관할구역을 구성했는데 그 경계는 일반적으로 로마제국의 지방 경계선과 동일했고 그 지역의 수도가 교구로 불리웠다. 이는 지방 교회가 그 지역의 수도에서부터 먼저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방교구의 주교들이 중요한 임무를 위해 시노드(종교회의)에 몰려들었고 시노드는 교회일치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주요한 방편이 됐다.

그리고 이러한 본당과 교구제도의 일치는 로마 교황직에서 전교회의 통일이라는 정점을 이룬다.

교계제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공의회는 교계제도가 신자들을 지배하기 위한 권력체계가 아니고 교회에 봉사하는 제도임을 분명히하고 주교직은 독재권력이 아닌 횡적인 협력과 조정을 통한 단체적(Collgialis)인 것이며 신부는 개인적인 주교 대리역이 아닌 주교를 중심으로 한 단위를 이루는 단체(Presbyterium)이며 부제는 그 자체로 독립된 직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