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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무리 뭐라 해도 개신교 용어 나오는 「성교요지」는 가짜다 / 윤민구 신부

윤민구 신부 (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
입력일 2014-08-12 수정일 2014-08-12 발행일 2014-08-17 제 290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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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는 기록이나 전승은 어디에도 없었다. 초기교회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전혀 없었다. 그런데 1967년에 고(故) 김양선 목사에 의해 갑자기 「성교요지」의 존재가 알려지게 됐다. 김양선 목사가 자신이 수집한 「성교요지」 등 다수의 초기 천주교 관련 자료들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천주교 측 연구자들이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 「성교요지」를 이벽이 쓴 것이라며 열광했다.

그런데 필자가 연구해 보니 놀랍게도 바로 그 「성교요지」에 이벽이 죽고 나서도 100년이나 지난 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용어들이 무더기로 들어 있었다. 즉 ‘감람’, ‘야화화’(耶和華-여호아) 등 천주교에서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개신교 용어들이 「성교요지」에 상당수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용어들은 중국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벽이 죽은 지 약 30년이 지난 1814년부터 한문으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과 한국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여 사용한 철저한 개신교 용어들이다.

그러니 이벽이 이런 개신교 용어들을 알 리도 없고 그런 용어들이 들어있는 「성교요지」를 썼을 리는 더욱 없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용 또한 문제다. 「성교요지」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언뜻 보면 성경이나 예수님에 관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성경이나 가장 기본적인 천주교 교리에도 안 맞는 엉터리들이 너무나 많다.

한국교회 초기 지도자였던 이벽이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 「성교요지」는 이벽이 쓴 글일 수가 없는 가짜며, 심지어 1930년대 이후 누군가 개신교 성경을 대충 읽고 처음부터 판매를 통한 이윤 목적으로 지어 낸 글이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최근에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라는 책을 통해 자세히 밝혔다. 그리고 7월 19일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이에 대한 공개 연구발표를 했다.

이 연구발표에 토론자로 참석한 양업교회사연구소장 차기진 박사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2003년경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자료들을 검토하고 「성교요지」와 「이벽전」 등 윤 신부님의 저서에서 거론된 모든 자료를 위작이라고 결론 내린 사실이 있다”고 한 것이다. 즉 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에서는 이미 「성교요지」가 가짜라고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주교회의 시복시성특위의 판정과는 다르게 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7월 24일 정기회의를 하면서 필자의 책을 비판했고 그 내용을 가톨릭신문에 기고문 형식으로 실었다.

그 기고문에서 위원회는 “개신교적 용어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성교요지」를 위작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공표하면서도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원본의 존재 여부와 그 원본의 진실성을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의 핵심은 피한 채 원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기록이나 전승이 없으니 존재하지도 않을 원본을 어떻게 찾으며, 그 진실성을 어떻게 주목한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지금도 가짜 천주교 자료들을 팔러다니는 사람들이 왕왕 있는 상황인데 이것은 또 다른 사기극을 조장해 낼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위원회에서는 또한 “윤 신부의 저서는 세 갈래로, 곧 세 종류로 전해 내려오는 「성교요지」의 각 사본을 분리하지 않고 비판했기 때문에 사료의 진실성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에 미흡함이 발견됐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치 필자의 책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것처럼 발표했다.

필자는 소수의 연구자들을 위한 자료집이나 논문을 낸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도 문제의 실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 종류의 「성교요지」를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게 오히려 더 상세하게 각각의 「성교요지」에 어떻게 다르게 나오는지 일일이 예문까지 들어가며 비교 검토했다.

더욱이 그 중 한 종류의 「성교요지」는 천주교 안에서는 필자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면밀히 분석했다. 그리하여 고(故) 김양선 목사가 기증한 세 종류의 「성교요지」 모두 개신교 용어들과 엉터리 성경 내용들로 가득한 가짜라는 점을 증명해 냈다. 그런데도 위원회에서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에서는 아울러 “「성교요지」의 원문과 주석을 분리해 비판하는 일도 요구된다. 이는 원문의 저자와 주석의 필자가 다른 사람인 경우도 발견되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필자의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본문과 주석을 쓴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말아야 한다. 설령 필자와는 다른 연구방법론을 생각하더라도 한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까지 이벽이 썼다고 알려진 그 「성교요지」에 상당수 개신교 용어들과 엉터리 성경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 말이다. 아무리 연구방법론을 바꾸어도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런 「성교요지」를 이벽이 썼을 리가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위원회에서 「성교요지」를 위작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천주교회와 이벽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윤민구 신부 (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