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죽음의 희망조차 없다 성경에도 안 나오는 중립 천사들 하느님 등지고 자신만 사랑하며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어
단테는 지옥문을 지나 지옥 입구에 들어선다. 거기에는 ‘치욕도 없고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악한 영혼들이 처참한 상태에 있었다.
저기에는 하느님께 거역하지도 않고 충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그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도 섞여 있노라. (지옥 3,37-39) 하느님께 반역한 마왕 루치페로(Luci-fero)는 그리스어로 ‘새벽의 여신을 나르는 자’(Eos-phoros) 즉 빛을 나르는 천사였다. 구약성경에는 “어찌하다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네가!”(이사 14,12)라고 기록되어있다. 그 루치페로가 사탄이 된 것이다. 예수도 “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루카 10,18)라고 증언한다. 여기서 단테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이른바 ‘중립 천사들’(neutral angels)이라는 전승에 동의한다. 그들은 루치페로가 하느님께 반역할 때, 선한(하얀) 천사들과 악한(검은) 천사들 사이에서, 마치 자동차의 중립 기어처럼, 어느 쪽으로도 가담하지 않고 단지 저 자신만을 위해(per sé) 있던 회색빛 천사들이었다. 하지만 회색빛 천사들이라고 해서 제3의 천사들은 아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 대한 사랑 사이에 중간 지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역 천사나 미온적 천사나 모두 다 자기만을 위한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싱글톤의 번역처럼, 중립 천사란 검은 천사들 가운데 따로 떨어져 있는(stood apart) 회색빛 천사들을 가리킨다. 충실함이 하느님을 향해있는 사랑의 완성이라면, 반역은 하느님을 등지고 자기를 향해있는 사랑의 전도(轉倒)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행위를 회피한 그들은 이른바 냉담 천사들이다. 끌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의 말대로,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 위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이미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다.(이사 50,5) 단테는 특히 도덕적 위기 때 중립에 서는 자들을 가장 경멸하였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 양편으로부터 모두 배제되어 우주적으로 고립된다. 베르길리우스도 단테에게 말한다. 세상은 그들의 명성을 허용하지 않고, 자비와 정의는 그들을 경멸하니,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보고 지나가자. (지옥 3,49-51) 그들에게는 죽음의 희망조차 없다. 즉 그들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죽고 싶지만 죽음조차 그들을 피해 달아난다(묵시 9,6). 단테는 분명히 깨달았다. “그들은 하느님도 싫어하시고 하느님의 적들도 싫어하는 사악한 자들의 무리라는 것을.”(61-63행) 차라리 실패해 본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해 본 사람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듯이,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mai non fur vivi)”(64행) 그야말로 비열한 자들이다. 「요한묵시록」의 저자가 라오디케이아 교회 신도들을 향해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고 했듯이, 단테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자유의지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자들을 호되게 비판한다. 몇 년 전인가 나는 성 바오로의 선교 여행지 답사 때 라오디케이아 교회 유적지를 둘러본 적이 있다. 왼편 파묵칼레 온천에서는 뜨거운 물이 흘러오고, 오른편 설산에서는 차가운 물이 흘러내려 오는데, 그 한가운데인 라오디케이아에 다다르면 그 물들은 정말 미지근해졌을 것이다. 성경의 비유가 참으로 실감 나는 곳이었다. 단테는 그 영혼들 가운데 가장 비열한 자의 그림자를 알아보았다.(60행)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예수를 용서하지도 처벌하지도 못했던 본시오 빌라도라는 설도 있고(마태 27,24), 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장자 상속권을 넘긴 에사우라는 설도 있다.(창세 25,29-34) 그러나 초기의 주석가들은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이라고 말한다. 교황은 원래 은수자였으나 1294년 85세의 나이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나폴리에 신임 교황의 거처를 마련한 그는 카를로 단조 2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다. 정신적 고통으로 이미 퇴위를 결심한 그는 교회법 학자인 카에타니 추기경(후임 교황이 된 보니파시오 8세)에게 자발적인 퇴위에 대한 그릇된 조언을 듣고는 다섯 달 만에 다시 피에트로 수사로 돌아갔다. 그러나 단테의 주장과 달리 교황의 퇴위가 비겁함의 행위가 아니라 보니파시오 8세 교황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고귀한 자기 포기의 행위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영혼들은 뱃사공 악마 카론이 싣고 가는 배에 올라탄다. 그들은 아케론강(고통의 강)을 건너 영원한 어둠 속, 불과 얼음의 지옥 안으로 실려 간다. “악마 카론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들을 가리키며 모두 한데 모아 놓고, 머뭇거리는 놈들을 노로 후려쳤다.”(109-111행)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