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에 따라 나눠진 층… 맨 밑에는 배신자들 지옥, 거대한 깔때기 모양 구덩이 하느님은 ‘기만’ 가장 싫어하셔 기만 행위 가운데 최악은 ‘배신’
단테에 의하면 지옥은 북반구에 있는 거대한 깔때기 모양의 구덩이다. 그 구덩이는 8개의 동심원을 따라 내려가면서 좁아져 맨 밑 제9 지옥에 이른다. 단테는 지옥을 9층으로 나누고 각각의 층을 원(圓, cerchio)이라고 부른다. 나는 공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마치 지하 주차장을 내려가듯이, 각각의 원을 제1 지옥(B1), 제2 지옥(B2)… 제9 지옥(B9)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제1 지옥은 림보다. 지옥 같지 않은 지옥이다.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아이들과 유덕한 영혼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엔 기쁨도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러운 곳도 아니다. 다만 하느님을 뵙고자 간절히 원하나 가망이 없기에 한숨만이 나오는 곳이다. 제2 지옥에는 애욕의 죄인들이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고 있다. 제3 지옥에는 식탐(食貪)의 죄인들이 심한 악취가 풍기는 진창 위에서 뒹굴고 있다. 제4 지옥은 재물을 모으기만 한 인색한 자들과 낭비만 한 자들로 양분되어있다. 그들은 가슴으로 무거운 짐을 굴리며 원의 반쪽을 영원히 왕복한다. 제5 지옥에는 분노로 자기 자신을 잃고 몸을 망친 자들이 스틱스강에서 성난 얼굴로 난투를 벌이고 있다. 그 슬픔의 강 스틱스를 건너면 저만치에 불행한 하부 지옥의 도시 디스(Dis)가 불타고 있다. 단테는 이제 디스의 성벽 문 즉 지옥의 내문(內門) 앞에 와 있다. 사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지옥, 지옥 속의 지옥이다. 상부 지옥의 죄들은 그저 무절제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하부 지옥의 죄들은 모두 악의(惡意)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천사의 도움으로 내문을 통과한 단테는 제6 지옥에서 이단자들이 불타는 관(棺) 속에서 벌 받고 있는 광경을 본다. 지옥 편 제11곡에는 어떤 극적인 일화도 없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악취를 피해 이단자 아나스타시오 2세 교황(재위 496~498)의 무덤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베르길리우스는 특히 디스의 성벽을 경계로 한 하부 지옥의 특징에 관해 설명한다. 악의로 자행하는 모든 행위는 하늘에서 미움을 산다. 그것들의 목적은 정의를 방해하는 것이며, 그 모든 불의의 목적은 폭력이나 기만으로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이다. 그런데 기만이란 인간 고유의 악이기에, 하느님께서 가장 싫어하신다. 따라서 사기꾼들은 더 아래에 있고 더욱 큰 고통을 받는다. (지옥 11,22-27) 무절제의 죄들은 상부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 그 죄들은 선택적 악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약함이나 격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적 악의에서 나온 죄들은 하부 지옥에서 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상부 지옥과 하부 지옥의 차이가 각각 성약설(性弱說)과 성악설(性惡說)을 지칭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단테가 왜 상부 지옥의 죄인들은 불타는 도시 디스 안에서 벌을 받지 않는지를 묻자, 사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7,1)에 나오는 ‘성품과 관련해서 피해야 할 것 세 가지’를 들어 설명한다. 네가 공부한 「윤리학」이 하늘이 원치 않는 세 가지 성품을 완벽하게 검증할 때 사용한 저 말들, 무절제, 악의, 미친 수심(獸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또한 무절제는 하느님께 덜 대드는 것이기에 덜 비난받는다는 것을 모르느냐? (지옥 11,79-84) 하부 지옥인 제7 지옥은 폭력자들로 가득한데, 여기에는 타인에게, 자기 자신에게, 하느님에게 폭력을 가한 죄인들이 벌 받고 있다. 제8 지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악의로 기만(欺瞞)을 한 자들이 벌 받는 곳이다. 특히 기만의 죄는 지옥 편 제18곡에서 제34곡까지 이어지는데 지옥 편 전체 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여기에는 뚜쟁이와 아첨꾼들, 성직 매매자들, 점쟁이들, 탐관오리들, 위선자들, 도둑들, 모사꾼들, 분열과 불화를 일으킨 자들, 위조범들이 열 개의 구렁으로 나뉘어 있다. 물론 최악의 기만은 배신이다. 그래서 혈연과 조국의 배신자들, 친구와 손님의 배신자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인류의 은인인 그리스도 예수와 황제 카이사르를 배신한 자들이 제9 지옥에 배치되어 있다. 단테가 지옥 편 제11곡에서 지옥의 구조와 죄의 분류를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에 의하면, 11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수인 10(십계명=하느님의 법)을 깨고 일탈한 죄를 상징하는 수이다. 「신곡」에서 죄(peccato)라고 하는 말 역시 전부 11번 나온다. 그리고 죄의 분류는 제11곡의 111행에서 끝난다. 또 원죄를 지닌 인간이라는 말(uomo, omo)도 110회(11×10) 나온다. 단수형으로 99회(11×9), 복수형으로 11회 나온다. 즉 인간은 죄(11)와 십계명(10)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33세(11×3)에 돌아가셨는데 그것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이다. 「신곡」의 형식이 3운구법(韻句法, terza rima)에 의해 3행 33음절(11×3)로 된 것도 다 그런 의도에서이다.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