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⑬ 연옥 문의 천사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입력일 2021-06-22 수정일 2021-06-22 발행일 2021-06-27 제 325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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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를 받아들이는 심판자
연옥 문에 이르는 세 개의 계단 통회-고백-보속 고해성사 과정 상징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사죄권 행사
참회를 통한 사죄 여부 판단하며 죄의 상처 씻어 내도록 이끌어

‘연옥문’(1365년경).

지옥의 내문(內門)은 지옥 편 제9곡에 나온다. 그 문을 들어서면 본격적인 지옥이다. 연옥 편도 제9곡에 와서야 연옥 문이 나온다. 여기서도 그 문을 들어서야만 본격적인 연옥이 시작된다. 단테가 깊이 잠들어 꿈을 꾸고 있는 사이 성녀 루치아가 단테를 연옥 문 앞까지 옮겨다 준다.

문 하나를 보았는데, 아래에서 문까지

서로 다른 색깔의 계단 세 개가 있었고,

아직은 말 없는 문지기 한 분을 보았다.

(연옥 9, 76-78)

계단 맨 위에는 천사가 앉아있다. 천사가 뽑아 든 칼은 너무나도 눈부셔 단테는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칼은 판결을 내리는 권위를 가진 분의 표시이다.

우리는 그곳으로 다가갔는데 첫째 계단은

새하얀 대리석으로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나의 모습이 그대로 안에 비쳐 보였다.

둘째 계단은 어둡기보다 검은색인데

거칠고 메마른 돌로 되어있었으며

가로와 세로로 온통 금이 가 있었다.

그 위에 얹혀있는 세 번째 계단은

마치 핏줄에서 튀어나오는 피처럼

새빨갛게 불타는 반암(斑岩) 같았다.

(연옥 9, 95-102)

이는 고해성사의 3단계와도 같다. 즉 하얀 대리석으로 된 첫째 계단은 거울을 보듯이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깨끗한 양심을 상징한다. 이 계단에서는 마음의 통회가 일어난다. 흑자암으로 된 둘째 계단은 수치심에 괴로워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의 죄를 있는 그대로 입으로 고백함을 상징한다. 진홍암으로 된 셋째 계단은,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보속에 매진하는 행위를 상징한다. 천사는 그 위 다이아몬드에 앉아있다. 이는 악에 지지 않는 강인한 정신으로 사제의 임무를 완수함을 상징한다. 단테가 무릎을 꿇고 얌전하게 문을 열어줄 것을 청하자, 천사는 칼끝으로 칠죄종을 의미하는 일곱 개의 ‘P’를 단테의 이마에 새긴다. 단테는 앞으로 칠층산을 오르며 ‘P’를 하나하나 지워나갈 것이다. ‘P’는 죄를 의미하는 라틴어 ‘Peccatum’에서 왔다. 천사는 죄를 상처라고 말한다. “안으로 들어가 이 상처들을 씻어라.”(114행)

그분의 옷은 갓 파낸 마른 흙이나

또는 재의 색깔과 비슷하였는데,

그 아래에서 열쇠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금으로, 다른 하나는 은으로 되어

있었는데, 먼저 흰 열쇠를, 다음에 노란

열쇠를 문에 꽂았으니 나는 무척 기뻤다.

(연옥 9, 115-120)

열쇠들의 힘에 대해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보충부 17,2-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열쇠의 힘은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를 받아들이고 합당하지 못한 자를 거부하는 교회의 판단을 통해서 행사되는 능력이라고 정당하게 정의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열쇠에 대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열쇠들에 대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교회의 판단 직무에 관련되는 행위는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즉 재판받는 자에 대해 은총에의 합당 여부를 판가름하고, 사면을 선고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하나라기보다는 두 가지 능력이다.”

금 열쇠는 사죄권을 상징한다. 그 권위는 하느님에게서 온다. 은 열쇠는 사죄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상징한다. 그것이 죄의 매듭을 풀어준다. 그러므로 사제에게는 죄인이 참회를 통해 사죄받을 만한지를 알아보는 심리학적 능력이 요구된다.

이것을 나는 베드로에게서 받았는데

그분은 내게 발 앞에 엎드리는 사람에게

잘못 열 망정 잠가 두진 말라고 말씀하셨다.

(연옥 9, 127-129)

법정에서도 애매한 경우에는 판사가 피의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다.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