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23) 지복직관(visio beatifica)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입력일 2021-11-24 수정일 2021-11-24 발행일 2021-11-28 제 327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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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서 하느님을 뵙는 단테
영광의 빛의 광휘로 들어가
하느님에 의해 신비에 관통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 위해
단테가 본 하느님 모습을
기억·표현할 수 있도록 기도

“인생은 나그넷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옛 대중가요 ‘하숙생’의 한 구절처럼 사람은 누구나 다 길 위에 서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는 그저 정처 없이 흘러가는 나그네(viator)가 아니라, 확실한 목적지에 도달할 순례자(comprehensor)라는 점이 다르다. 순례의 끝에는 하느님을 영원히 뵙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의 단테를 위한 기도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지금 이 사람은 우주의 가장 낮은 구덩이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숱한 영혼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이르렀습니다.

당신께 은총을 주십사 비오니

마지막 구원을 향하여

더욱 높이 눈을 들어 올릴 수 있는 큰 힘을 주십시오. (천국 33,22-27)

여기서 구덩이(lacuna)는 지구 중심에 있는 지옥의 구덩이를 말한다. 지금 성 베르나르도와 단테는 천상 장미의 노란 중심 안에 있다. 예전에 성 바오로는 천국에서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아무것도 보고할 수 없음을 토로하였다.(2코린 12,4) 시인 단테 또한 그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테는 탈혼(奪魂) 상태 안에서(in raptu)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하느님을 뵙는 그 최종 체험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당신의 보호는 인간의 충동을 이깁니다.

보십시오, 베아트리체와 모든 복자들이

제 기도를 위해 당신께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천국 33,37-39)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언급된다. 모든 복자들이 손을 모으고 있는 이 인상 깊은 장면에서 그녀를 따로 부름은 그녀에게 바치는 궁극의 찬사이다. 「새로운 인생」(26,6)에서도 그녀는 단테를 하느님께 인도하던 ‘지상의 기적’이었다.

최종 성취를 위해 분투하고 있는 영혼을 돕기 위해 은총이 위로부터 내려온다. 그리고 시는 초점의 가장 단순함 안으로 들어간다. 보는 자 한 사람과 하나의 목표인 하느님만이 남는다. 성모 마리아에게 드린 기도는 이루어져 단테의 시력은 한 점 흐림 없이 맑아진다. 단테의 시선은 내려오는 영광의 빛을 통해 숭고한 광휘 깊숙이까지 들어간다. 사멸할 인간의 시선은 상승하여 최상의 신비를 관통한다.

여기서 시인의 분투는 이중적이다. 즉 기억과 표현이다. 그러나 각각의 노력은 충분한 성취를 얻지 못한다. 그 엄청남(oltraggio) 때문이다. 이 관통은 하느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단테는 그가 본 하느님의 모습 한 부분만이라도 시에 적어 넣을 수 있도록 해주십사 하느님께 기도한다.

오, 최상의 빛이시여, 죽을 인간의 이해로부터

그토록 초월해 계신 분이여, 제 기억에

당신 드러나신 모습의 조금이라도 빌려주소서.

그리고 제 혀에 넘치는 힘을 주시어

당신 영광의 섬광 그 불티 하나만이라도

미래의 사람들에게 남겨줄 것을 허락하소서. (천국 33,67-72)

이 마지막 기원은 무사이들이나(지옥 2,7, 연옥 1,8) 아폴로(천국 1,13)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직접 드리는 기원이다. 은총이 시인의 기억에 부여하는 것은 미래 세대의 독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불티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한 것이다.

단테는 이제 하느님 영광의 빛의 밝음을 견디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밝음은 점점 더 증가하고 그 밝음을 통해 단테는 지복직관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하여 제33곡 81행에서 “나의 시선은 무한하신 선(善)과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숫자 ‘81’은 중세 수비학(數秘學)에서는 8에서 1을 더한 숫자로, 기적의 수이다. 영광의 빛을 통한 상승 운동은 마침내 그 목표에 도달하였다.

그 심오함 안에서 나는 보았다

전 우주에 흩어져있는 종이 조각들이

사랑에 의해 단 한 권의 책으로 묶여있는 것을. (천국 33,85-87)

그리고 삼위일체의 신비를 단테는 찰나의 섬광(閃光) 안에서 직관한다.

고상한 빛의 심오하고도 밝은 실체 안에서

동일한 크기를 한 세 가지 색깔의

세 개의 원이 내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원은 마치 무지개에서 무지개가 생기듯,

다른 한 원에 반사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 번째 원은

둘이 똑같이 타며 발산하는 불의 모습이었다.

(천국 33,115-120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