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병영일기] 인연의 소중함 / 문상준 중령(진)

문상준(가브리엘) 중령(진) / 합동참모본부
입력일 2022-01-11 수정일 2022-01-26 발행일 2022-01-16 제 327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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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레바논유엔평화유지군사령부(UNIFIL)에 근무하면서 인연을 맺은 레바논이라는 나라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가 수도인 이 나라는 가톨릭신자들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해 도시 중심부마다 아름다운 성당이 있는, 중동에선 보기 드문 가톨릭 국가였습니다. 현재는 인접 국가에서 이주한 이슬람교도들로 인해 가톨릭신자의 비율은 3분의 1로 줄긴 했지만, 레바논에는 아직도 수도 베이루트 중심부에 있는 성 조지 성당을 비롯해 북부 산악지역 시골에도 아름답고 특색 있는 성당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티로, 시돈 등 유서 깊은 도시와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카나도 있습니다. 레바논이 주장하는 카나의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나자렛 근처 다른 곳을 카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카나에는 카나 혼인잔치 기념교회가 서 있습니다.

레바논은 밖으로는 이스라엘과의 분쟁으로, 안으로는 종교 정파들 간의 정쟁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이지만, 제가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외국 생활을 했던 나라이기도 하고, 나라 곳곳에 가톨릭의 자취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여 저는 레바논을 떠올릴 때마다 ‘앞으로 잘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군인인 저는 다양한 지역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소위로 임관해 소대원들과의 첫 만남으로 인연은 시작됐고 UNIFIL에 근무할 때는 45개국에서 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는 등, 십수 번 부대와 보직을 바꿔 가며 근무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참 많았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입니다. 이 시구(詩句)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다른 사람과 맺는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헤어질 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성탄에 만난 인연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저희 본당에는 저보다 먼저 레바논에 부대 파병자로 복무하다 복귀한 전우가 계시는데, 성탄 미사 후 제가 이분 아들의 대부로 아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이분과 함께 파병생활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저도 레바논 파병 경험이 있는 데다, 아기의 세례명이 레바논의 성인 샤르벨 마크루프(Charbel Makhlouf)여서 더욱 뜻깊은 세례식이었습니다.

레바논이 잘 되길 바라는 것처럼 저도 대부로서 이 아기의 장래가 항상 밝기를 바라면서 세례식을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겠지만 제 대자 샤르벨 마크루프와의 인연은 가장 뜻깊은 인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문상준(가브리엘) 중령(진) / 합동참모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