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신학원 축제가 알려준 것들 / 고계연

고계연 베드로,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입력일 2023-05-23 수정일 2023-05-23 발행일 2023-05-28 제 334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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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합창에서 테너 역의 아버님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신기했어요. 소리가 묻히는 듯했지만 감상할 만했습니다. 지휘자와 반주자의 리드에 맞춘 화음은 환상적이었죠. 다음에 집으로 찾아가면 한 번 더 불러주세요. 감흥이 잔잔히 남아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되네요.”

“아빠의 평소 모습과는 달리 상인 역할은 낯설지만 익살맞더라고. 짙은 콧수염과 턱수염 화장에 깜짝 놀랐고 몸짓과 대사도 웃겼지. 다들 연극 초보라고 하기엔 자연스러운 연기, 의상과 분장이 잘 어울려 몰입하게 되었어. 바쁘신 와중에 연습 또 연습하셨을 모습이 그려지던데….”

지난 5월 13일 가톨릭교리신학원 제55회 ‘밀씨 축제’를 즐겼던 사위와 딸의 촌평이다. 아이들의 말마따나 신학원 공동체는 축제를 앞두고 한 달 가까이 구슬땀을 흘렸다. 빡빡한 수업 일정 속에서도 점심때와 방과 후에 짬을 내 연습했다. 학과 대표들과 신부님은 회의를 거듭하며 축제의 틀을 짜고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하나 됨의 잔치를 위한 저희의 모든 노력과 정성을 당신 뜻에 일치하도록 이끌어 주시어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게 하소서.” 연습과 회의 때에는 축제 기도문 합송이 빠지질 않았다.

싱그러운 5월 성모 성월에 신학원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마당에서는 먹거리 장터와 버스킹 공연이, 1층 로비에서는 학우들 기부 물품 판매 행사가 열려 외부 손님들이 몰렸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일상적 유행) 국면으로 접어들자 무려 4년 만에 축제의 팡파르가 울린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공중 보건 위기 상황을 해제하고 우리 방역 당국도 다음 달 1일부터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를 하향 조정하는 데 따른 결과다. 불과 두세 달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 반전이라 반갑다.

이맘때면 대학가 등에서도 축제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축제’의 사전적 의미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다. 여기서 축하는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쁨과 즐거움을 나눈다면 문화적인 교류와 전통의 유지에도 기여할 터다. 그러니 축제 없는 삶은 얼마나 단조롭고 팍팍하겠는가.

성경에서 보아도 축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들이 이집트 종살이할 때 모세는 파라오에게 이집트를 떠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이유는 “주님의 축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탈출 10,9 참조)이었다. 유다인들은 그 후 3대 순례 축제, 즉 과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축제에 가고 오는 여행길에 주님의 이름을 위하는 백성임을 자각했고, 친교를 나눴다.

사실 신학원에서 축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몇 년 새 학과 인원이 많이 줄어든 탓이다. 중복 출연은 불가피했고 잦은 연습으로 피로감과 함께 볼멘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눈살 찌푸리지 않고 서로 배려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게다가 연극 연출자와 합창 지휘자가 우리 가운데 있었다. 또 버스킹 공연에다 조명과 음향 담당까지…. 누군가의 탈렌트(재능)는 분명 하느님의 안배이리라. 축제는 축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학우들에게 재충전을 선물했다. 또 우리가 이곳을 떠난 뒤에 “그해 5월은 즐거웠다”고 추억할 수 있음도 복이다.

신학원의 축제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무엇에서나 결과의 재료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공동체야말로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교회의 참모습이다. 코로나19 탓에 4년 가까이 신자들의 발길이 줄어든 교회도 ‘본당의 날’ 같은 축제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 냉담 교우들까지 잔치에 초대하고 그들의 식은 신앙 열정에 부활초 같은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고계연 베드로,전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