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독, 끊어 버립니다”, 일산 카프성모병원을 가다 ]
‘금연하기’, ‘다이어트를 통해 체중 감량 3kg’, ‘금주하기’, ‘책 100권 읽기’ 등... 2025년 희년 새해가 밝았다. 사람들은 1월을 맞아 다시금 새해 결심을 한다. 올해는 특히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표어에 맞춰 갖가지 희망을 안고 한 해를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모든 악을 끊어 버렸던 세례 때의 결심을 다시금 해보는 사람이 많다. 나는 과연 끊어 버릴 수 있을까? 다양한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산 카프성모병원(이사장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 병원장 박우리 안젤라 전문의)을 찾아봤다.
희망으로 끊어내다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을 일했어요.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20대 토목기사들이 와서 잘난 체를 하더군요. 현장에 대해선 내가 더 잘 아는데 맞지 않은 주문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많이 마셨죠.”
명상으로 시작된 ‘고위험 상황 분석 및 대처’ 강의 시간. 박진수(가명) 씨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오늘 강의는 중독에 의한 신체적 불편함에 대한 내용이었다. 알코올 중독자는 보통 단주 시 불면증과 우울증, 불안이 온다고 설명한 장은화(아녜스) 교육상담부장은 “교대 근무이거나 긴장감이 높고, 대민 업무를 보는 중장비 기사, 소방수, 경찰 등에도 음주 위험 강의를 나간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는 핑계고 변명거리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모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 중독에 걸리진 않거든요. 운동이라든가 다른 취미 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 관리를 많이 하죠. 나 같은 경우 술이 쉬워서 그쪽으로 풀었던 것 같아요.”
김민학(가명) 씨의 날카로운 지적과 자기반성이 이어졌다. 강의실은 농담이 오갈 정도로 분위기가 밝았다. 정의철(가명) 씨는 “병원의 강의 프로그램이 워낙 좋아 중독된 것으로 손이 갈 때마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며 ‘뇌와 중독’, ‘마음 챙김’, ‘감정 관리’ 등을 추천했다.
“얼마 전 12월 25일 성탄 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명은 임마누엘(가명)이에요.”
치료 중이었음에도 성탄과 관련된 세례명으로 영세를 한 참가자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서 ‘끊어 버립니다.’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났다.
중독에서 해방되도록…다양한 중독 예방·치료 프로그램 제공
개원 20주년이 된 일산 카프성모병원은 한국중독연구재단(이사장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이 설립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에서 운영하는 알코올 중독 중점 치료 병원이다. 입원과 외래 치료, 재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 외에도 담배, 약물, 행위 중독 클리닉도 진행한다. 연간 1만여 명의 환자들이 내원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 입원 치료의 경우 10년 이상의 경험이 축적된 체계화된 프로그램을 10여 종의 교재를 통해 진행된다. 알코올 중독을 이해하기 위한 ‘뇌와 중독’, ‘중독의 이해’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며, 술을 끊기 위한 마음을 키우는 ‘회복을 시작하는 마음’, 다시 술 마시지 않기 위한 준비로 ‘재발 예방 교육 프로그램’, ‘고위험 상황 분석 및 대처’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미술치료, 음악치료, 명상, 요가 등 예술 요법과 대안 요법도 운영하고 있다.
산책이 가능한 테라스와 화초, 사계절 운동이 가능한 강당 등이 있어 답답함을 덜어주며 매주 진행되는 가족교육과 전문가를 통한 가족 상담 또한 가능하다. 매주 봉헌되는 천주교 미사에 신자와 비신자 누구나 자율적으로 참여해 영적 회복을 돕는 것은 물론이다.
중독, 완전한 절제 권해
담배, 술, 음식, 스마트폰, 게임 등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더욱 중독이 쉽다. 이것을 완전히 끊는 것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할까? 박우리 병원장은 대부분의 문제가 자신이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상태에서 발생한다며 완전히 절제할 것을 권한다. 박 병원장은 “자제를 할지, 완전히 끊어낼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많이 마시고 오래 했는지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조절과 절제 능력이 보전되어 있는지 아니면 상실됐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며 “자제 노력은 대부분 원래의 습관대로 돌아가게 되므로 되도록 완전히 끊어버릴 것을 권장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 병원장은 “중독 질환은 가능한 한 빠르게 치료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며 “최근에는 직장 및 가정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중독의 문제를 겪는, 즉 고도 적응형 환자들의 방문이 증가하고 있으며 젊은 층의 유입도 굉장히 많은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을 앞두고 자가 진단을 통해 내원한 20대 후반 한 남성은 일상생활의 어려움은 없지만 조절력에 문제가 있는 듯해 완전한 단주를 결심한 뒤 수년간 잘 지키며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독은 그 사람의 관계나 욕구 등의 문제가 모습을 바꿔 나타난 걸 수 있어요. 다른 누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지요. 내 안의 소리,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변화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