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25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부림지구 벙커X」 강영숙 작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4-19 수정일 2022-04-19 발행일 2022-04-24 제 329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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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일상 무너진 상황에서 정체성 지키려는 이들에 주목”
지진 생존자 이야기 담았지만
재난보다 생태에 초점 맞춰

강영숙 작가는 “재난의 반대말은 일상”이라며 “재난으로 생태와 일상이 무너지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고 말한다.

제25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 수상작으로 강영숙 작가의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2020, 창비), 신인상 수상작으로 한경옥(마르가리타) 시인의 「말에도 꽃이 핀다면」(2020, 현대시학사)이 선정됐다.

한국가톨릭문학상은 가톨릭 정신과 인류 보편적 진리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을 발굴하는 상이다. 올해로 25회 은경축을 맞는 한국가톨릭문학상은 1998년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한 이래 교회 안팎에서 문학을 통해 진리를 비춰온 뛰어난 문인들을 격려해왔다.

사상 초유의 재난 코로나19 팬데믹. 코로나19는 자연과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로 연결돼 있는지를, 그리고 인간이 그 생태를 얼마나 파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경종이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의 충격에 휩싸이기 시작한 2020년 2월. 이 재난의 한가운데 재난에 떨어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 출간돼 화제가 됐다. 바로 제25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에 오른 강영숙(54) 작가의 「부림지구 벙커X」다.

강 작가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에 놀랐다”면서 “정말 제게는 과분한 상이 주어져 부담스러우면서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본상에 선정된 「부림지구 벙커X」는 지진으로 파괴된 ‘부림지구’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하지만, 강 작가는 “재난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이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중에는 재난 상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생존법은 등장하지 않는다. 「부림지구 벙커X」의 초점은 재난보다 생태에 있다.

강 작가는 가톨릭신자는 아니지만 ‘생태’라는 관점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 강 작가는 생태신학자로 유명한 토마스 베리 신부의 저서 3권과 프란치스칸 여성 신학자인 일리아 델리오 등의 저서를 편집해 출판하는 일을 하면서 생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강 작가는 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면서 영향을 받았다”면서 “이런 사상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담기진 않았지만, 소설 속 세계를 표현하는데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건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맑은 햇빛, 시원한 바람 이런 거 아닐까요? 이런 자연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데, 올해만 해도 봄이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린 느낌이에요. 생태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싶어 쓰기 시작했어요.”

강 작가가 말하는 생태는 단순히 환경보호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는 인간을 포함해 인간을 둘러싼 모든 자연, 바로 생태가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메시지가 내재돼 있다. 첫 장편소설 「리나」에서도 작게나마 자연재해를 다뤘고, 여러 소설집을 통해 자연에서 비롯한 재난에 관심을 둬왔지만, 생태적 재난에 본격적으로 집중한 장편소설은 「부림지구 벙커X」가 처음이다. 강 작가는 자연을 상실한 인간이 쉽게 부서지는 존재임을, 그 인간 존재에 대한 겸손을 드러낸다.

강 작가는 “날씨가 사람을 바꾼다고 늘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이 문명 위에 있기 때문에 잘난 척할 수 있는 것이지, 허허벌판에 내던져진다면 나약하고 무능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재난의 반대가 평화일까요. 저는 일상이 아닐까 해요. 재난이 닥치면 저는 일상이 제일 그리울 것 같아요.”

강 작가는 생태적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고, 또 재난으로 자신을 둘러싼 생태, 일상이 무너지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야 하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강 작가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들의 인터뷰였다. 지진과 쓰나미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벚꽃의 아름다움을 말했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허둥대고 있었다. 강 작가 자신도 일본여행 중 겪은 지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 작가는 “지진이 나면 사람들이 대화를 하게 되는구나,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그렇게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이야기, 나의 고유함을 생각하고 서로 말하면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상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고유한 모습, 소설에 등장하는 ‘칩’이나 신분을 증명하는 어떤 데이터로도 담거나 통제할 수 없는 진짜 인간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앞으로도 문학을 통해 무너진 일상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해 나가는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산업재해나 대리모, 또 과학기술과 관련한 어려움 속에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이들, 특히 그중에서도 그런 재난에 맞닥뜨린 여성의 서사를 담아나갈 생각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무언가 정신없이 지나가기는 하는데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은 냉정하니까 우리가 이러거나 말거나 막 지나가잖아요. 소설은 현실에서 있어선 안 되는 상황을 상상해서 쓰지만, 이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 강영숙 작가는…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흔들리다」, 「날마다 축제」, 「아령 하는 밤」,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회색문헌」, 「두고 온 것」 등 여섯 권의 소설집을 냈다. 장편소설로는 「리나」, 「라이팅 클럽」,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 등을 썼다. 2006년 첫 장편소설 「리나」로 제39회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제4회 백신애문학상과 제5회 김유정문학상, 2017년에는 제18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 「부림지구 벙커X」

지진으로 폐허가 된 부림지구에 벙커를 마련해 생존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림지구는 대지진 이후 오염지역으로 분류돼 격리된 공간이다. 생체인식 칩을 주입해 관리 대상이 되면 인근 도시로 이주할 수 있지만, 관리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 그리고 삶의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은 이들이 도시의 잔해 속에서 살아간다.

작가는 재난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겪는 재난의 기억을 치열하게 그려낸다. 소설의 허구는 미세먼지, 대형 지진,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가 겪은 실제 재난의 기억과 겹치면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소설 속 가상의 공간 부림지구의 시간과 공간을 씨실과 날실을 짜듯 정교하게 구성하면서 뜻밖에 일어난 재난으로 평범한 일상 뒤에 숨어있던 균열이 어떻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도시의 번영과 쇠퇴, 재난과 고립, 국가의 방치와 통제 등 커다란 흐름 속에서, 특히 사회적 약자가 겪는 고통과 다시 일상을 세워나가는 모습은 소설적 허구라기에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모두들 그저 묵묵히 살고 있을 뿐인, 그림자 같은 착한 사람들이 이 소설에 있다”며 “겨우 이 정도의 소설을 쓰느라 주변의 고통을 몰랐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전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