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방한 당시 수행비서 겸 통역 담당 정제천 신부 “거룩함이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음에 놀라워”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한반도 분단에 아파했던 절절한 한국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 남짓 교황직을 수행하며 전 세계의 수많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위로와 희망을 줬다. 이에 본지는 2014년 방한 당시 교황의 수행비서 겸 통역 담당으로 교황의 곁을 지켰던 동아시아사목연수원 원장 정제천(요한·예수회) 신부와 한국 정부의 대표로 교황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간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 예수회 정제천 신부(동아시아사목연수원 원장)
저는 교황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위대한 영혼과 맞닿아있다는 의식을 하였습니다. 그 위대함이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저에게는 경이롭습니다. 교황님은 이웃집 아저씨나 수도공동체의 선배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을 줍니다. 거룩함이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제 삶의 화두입니다. 현대 세계에서 거룩함을 사는 길을 우리에게 일러주신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는 바로 교황님 자신의 내면 일기라고 짐작합니다.
교황님이 아시아의 첫 번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하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아르헨티나 한인 공동체와 성가소비녀회, 꽃동네를 통해서 한국인들이 부지런하고 신심이 깊고 잘 단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방한 당시 온 국민의 아픔이었던 세월호 사건을 아시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자 하였습니다. 남북 분단을 안타까워하시고, 모국어가 같다는 말은 어머니가 같다는 뜻이니 희망을 가지고 통일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또, 짧은 시간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강국으로 부상한 저력을 인정하면서 그 성장과 발전의 그늘을 직시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분입니다. 매사가 깔끔합니다. 전임 교황의 마지막 해에 각종 추문에 휩싸여 전전긍긍하던 교회가 그분의 등장으로 단숨에 말끔해졌습니다. 지난 2월 병원에 입원하시자 일부 언론은 조기 사임 등 섣부른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임은 최선의 답이 아니었습니다. 두 교황이 연이어 조기 사임하면 다음 교황이 큰 부담을 안게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 생각을 훌쩍 뛰어넘는 답을 갖고 계셨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바로 다음날 그분을 불러주셨습니다. 향년 88세였습니다.
지난 12년간 우리 모두 행복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현대 인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지금 교황님은 주님 곁에서 예수님과 함께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실 것입니다.
“교황님, 사랑합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저희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주교황청 대사 시절(2018년 1월~2020년 12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뵐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아무래도 첫 만남과 마지막 만남이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첫 만남은 신임장 제정식 때였습니다. 2018년 2월 16일, 그날은 마침 한국 최대의 명절 설날이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되어 열기를 뿜고 있었지만,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핵 단추를 운운할 정도로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신임장 제정식을 마친 후 교황님의 개인 서재에서 개별알현을 했습니다. 교황님과 독대(獨對)를 하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하여 교황청에 파견된 특명전권대사로서 교황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북한 방문 요청이었습니다. “교황님, 한반도가 무척 어렵습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하시어 북한 땅을 축복해 주시고, 북한 동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실 수 있습니까?” 교황님의 대답은 시원했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내가 왜 가지 않겠느냐. 기회가 되면 꼭 갈 것이다. 내 가슴과 머리에는 항상 한반도가 있다.”
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교황님은 방북 의사를 피력하신 후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르헨티나 시절 겪었던 한국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특히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의 병원 봉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황님과의 독대는 이례적으로 40분 가까이 진행됐습니다.
교황님의 방북 프로젝트는 2019년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하노이 노 딜)로 아깝게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불씨는 살아 있었습니다.
2020년 대사 임기가 끝날 즈음 귀국을 앞두고 이임 인사차 사도궁을 찾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할 때였습니다. 교황님께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교황님, 문재인 대통령에게 말씀하셨던 ‘소노 디스포니빌레(나는 북한에 갈 수 있다)’는 여전히 유효하지요?” “그렇고말고. 남북한 지도자의 손을 잡고 판문점을 걷는 게 나의 꿈이다.” 그냥 눈물이 날 것만 같았습니다. 교황님의 한국 사랑은 절절했고, 북한 방문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나는 교황님께 한국식으로 큰절을 드렸습니다. 절을 받고 난 다음 흐뭇해하시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