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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기자

vividcecil@catimes.kr

[독자마당] 아름다운 동행

입춘, 우수가 지났지만, 아직도 차가운 바람이 귀를 얼리는데 길가 빌라 기둥 옆에서 전화를 받는 자매를 보고 있다. 갑자기 “영분아! 정신 차려! 누구든지 한 번은 겪게 돼 있어. 연령회에 연락을 해놓을 테니 형제님이 운명하시면 전화해. 내가 갈게!” 휴대전화 저편에서 겁에 질린 율리아나 씨의 목소리가 울먹거렸고 통화를 하면서도 루치아 씨는 울고 있었다. 내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동행인가!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을 때 같이 울고 위로해 주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행복한 신앙의 동행들이 아닌가! 우리는 인자하신 어머니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고 이들은 한 동네에 30여 년을 살면서 신앙 안에서 신뢰와 우정을 쌓아온 절친들이다. 결국 그날 저녁에 율리아나 씨의 형제님(대세를 미리 받으셨다)은 안타깝게 운명하셨고 성당에는 연도 공지가 떴다. 나는 갑자기 토사곽란이 나서 자정에 응급실에 갔고 3일을 꼼짝 못 하다가 삼우제 날에 기를 쓰고 미사를 봉헌하러 가서 율리아나 씨를 만나 때늦은 위로를 했다. 그다음 주 레지오 마리애 회합에 출석한 율리아나 씨는 핼쑥하지만, 밝은 얼굴로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 내가 식사를 끝내고 “율리아나 씨 대단하세요. 나 같으면 못 일어났을 텐데”라고 했더니 그는 웃으며 두 손으로 15명 정도 되는 자매들을 가리키며 “모두들 도와주신 덕분에”라고 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다. 율리아나 씨는 형제님을 떠나보낸 그 힘든 상황을 세속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한 교우들과 소통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쏟아지는 햇빛 속을 걸으며 ‘나도 그런 동행이 있었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한 자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나도 어려울 때마다 기도해 주는 영적인 동행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주님은 공평하십니다” 고백이 절로 나온다. 따뜻해지는 등에 기운을 얻으며 행복한 걸음으로, 다음엔 만나면 즐겁게 얼굴을 마주하고 그 자매의 긴 하소연을 들어주리라 다짐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네. 푸른 풀밭 시냇가에 쉬게 하사. 나의 심신을 새롭게 하네.” 글 _ 조선자 아나스타시아(서울대교구 면목동본당)

발행일 2025-04-13 제3437호 22면

[독자마당] 내 영혼의 갈릴래아: 봉사의 기쁨

“오늘은 발 마사지 외에 침상 목욕 환우가 몇 분 계시니 신경 더 써주시고, 면도도 원하시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녀님의 병실별, 환우별 지시 사항을 메모하고 파견기도를 바친 다음 병실로 향합니다. 밤새 고통과 불면으로 잠을 못 주무신 환우와 보호자가 지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으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손과 발을 먼저 만지며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교감하면서 필요한 것을 여쭤봅니다.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해서 몸과 머리가 가려워요.” 따뜻한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드리고 머리도 전용 세정제로 감겨드립니다.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면도도 깔끔하게 해드린 후 부드러운 오일로 발 마사지를 하며 마무리 케어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와 성가를 불러드린 다음 다른 병실로 향합니다. 저는 제 아내와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센터에서 매주 토요일 환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2012년에 호스피스 봉사회에 입회하여 그동안 많은 환우의 아픔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해 왔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우들의 몸을 닦아드리고 마사지도 하며 기도와 성가로 작게나마 위로드릴 수 있는 시간은 정말 큰 은총인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환우와 가족이 성사를 청하고, 또 저희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세를 요청할 때면 정말 큰 보람을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임종을 앞둔 이분들을 통하여 저희 봉사자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봉사자들은 함께 기도하고 희생의 소중함을 느끼며 서로의 신뢰와 친교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환우 돌봄을 통해 봉사와 감사로 우리의 삶을 채찍질하고 더욱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정말 큰 은혜이고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봉사자들이 영적으로 더 정화되고 내면이 치유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삶에 더 감사하게 됩니다. 아픔 속에 있는 그분들의 몸을 예수님 몸처럼 닦고 문지르며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면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야기해 드립니다. 저희는 일주일 동안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생명이라는 그 숭고한 가치와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큰 축복의 시간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저희는 이 은혜로운 봉사만큼은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꼭 하고 싶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삶을 준비하는 환우들과 매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며 찬양팀을 만들어 사회복지시설에서 찬양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인데 외롭고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생활 성가로만 음악을 준비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손뼉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찬양 안에서 예수님의 손길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심을 느낍니다. 저희의 찬양을 정말 좋아해 주시고 늘 기다려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나마 위안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힘차게 더 열정을 다해 찬양 봉사를 해드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과 찬양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은 하느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함을 느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거나 뒷정리를 도와주시고 저희 찬양팀을 위해 늘 기도 해주신다는 말씀에 큰 힘을 얻으며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각오를 새깁니다. 양로원 찬양 봉사를 통해 저희 부부의 마음이 정화되어 새로워지고, 오히려 저희가 새 힘을 충전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 하느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행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프고 외롭고 가난한 이웃이 저의 갈릴래아고,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뵙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그리고 봉사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내 영혼의 갈릴래아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주님, 부족한 저희의 삶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글 _ 박기석 시몬(대구대교구 포항 장량본당)

발행일 2024-10-27 제3414호 22면

[독자마당] 가을의 기도

주님 가을이 이제야 자리를 잡았습니다. 입추의 절기가 무색하도록 우리의 잘못 살아 간 결과인 폭염이 오래 머문 시간 무더위 늦여름 안에서 열매들이 익어가는 소리는 아픔을 견뎌낸 인내와 희생의 소리였습니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먹이가 되기 위해 바쳐진 오곡백과, 열매들의 희생제사는 우리 주님을 닮은 듯 온 몸으로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모진 비바람 이겨낸 사랑의 승리 창조주께 영광 돌리며 순종한 아름다운 결실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을이 아름다운 대자연을 이루려 형형색색 곱게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는 계절 앞에서 주님, 우리를 돌아봅니다. 그 무더운 날들 안에서 온갖 열매들은 태양의 뜨거운 빛을 받아 안으며, 매서운 바람을 끌어안으며 사나운 빛줄기를 어루만지며 활활 타는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며 익어 갈 때 우리는 덥다, 덥다, 못 참겠다, 하면서 차디찬 인공 바람으로 마구 몸을 식히며 더위의 악순환은 반복되고 하나뿐인 지구는 아픔으로 울어야 했지요. 인간이 더위를 피해 살아간 방법은 이기심과 탐욕, 모두 죄악이었습니다. 무절제한 쓰레기로 땅은 신음하고 있고 무분별한 행동들로 바다는 오열하고 있고 인간 만능의 탐욕으로 산과 숲은 눈물 흘리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을 슬프게 한 저와 인류를 용서하소서. 이제 새롭게 하소서. 언젠가는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피조물의 존재로서 이 숭고한 가을이 주는 교훈을 듣습니다. “피조물들이여! 창조주를 기억하며 열매를 맺어라.” 주님! 인내와. 절제. 선행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으며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친절로 주님 주신 동산을 곱게곱게 물들여가도록 이 가을에 다짐해 봅니다. 주님 이끌어주소서. 아멘. 글 _ 김영희 요셉피나(서울 묵동본당)

발행일 2024-10-13 제3412호 22면

[독자마당] 고목처럼 살리라

큰 늙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가장 깊은 뿌리 끝부터 가장 높은 꼭대기 가지까지 수많은 생물이 평화롭게 함께 사는 고목처럼. 나무 뿌리 깊고 넓게 자리 잡은 땅 속엔 갖가지 벌레들이 개미, 땅강아지, 풍뎅이 오손도손 모여 살고, 사방으로 뿌리내린 땅 속엔 보금자리 파서 토끼와 여우 무리 이웃하며 살고, 하늘 향해 팔방으로 팔 벌린 나뭇가지엔 뭇 새들이 아늑한 둥지 짓고 옹기종기 사이좋게 살고, 향긋한 아름다운 꽃 찾아 이름 모를 뭇 나비 벌들이 분주히 나래 짓 하며 일용할 양식 서로 나누며 살고, 낮엔 푸르게 우거진 나무 숲 속에서 온갖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며 놀고, 간간이 딱따구리 찾아와 숨 가쁜 장단 맞추며 보금자리 만들고, 나무 그늘에선 사슴, 노루, 뭇 짐승들 한가롭게 휴식 즐기고, 나무 둥치엔 멧돼지 곰 찾아와 가려운 등 문지르고, 밤이면 부엉이, 박쥐들 활기차게 날갯짓하는 쉼터가 되고, 그늘진 이끼 자란 나무 아랫목엔 뭇 버섯들이 정답게 몸 맞대고 살아가는 넉넉하고 포근한 늙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신선한 대기 청량한 바람 담은 수 많은 푸른 잎새와 가지로 합장하며 수시로 기도하고, 갖가지 형상으로 하아얀 뭉게구름 한가로이 떠 노니는 파아란 하늘 지붕 삼아 우러러보며 천상 행복 기원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땅에 깊고 넓게 뿌리 내려 모든 것 품고 나누며 공생하는 고목처럼 살리라. 글 _ 이정규 마카리오(교육학자, 시인) / 캐나다 캘거리교구 성루카본당

발행일 2024-09-01 제3407호 22면

[독자마당] ‘분노는 나의 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내며

연일 파리 올림픽으로 지구촌이 뜨겁다. 선수들의 피땀 눈물이 스민 훈련 과정은 들으면 들을수록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특히 부상을 딛고 메달을 딴 선수들의 눈물과 포효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금 어떤 생각이 스치면서 기뻐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28년만에 배드민턴 금메달을 선사한 안세영 선수의 ‘작심 발언’이 뜨거운 감자다.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원동력은 분노였으며 금메달을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요 종합일간지들은 ‘안세영의 셔틀콕… ‘낡은 엘리트체육’ 강타하다’(한겨레 신문), ‘메달보다 과정이 더 중요한 MZ…안세영 ‘낡은 시스템’에 분노했다’(중앙일보), ‘낡은 시스템에 날린 MZ세대의 스매싱’(국민일보)으로 분석하며 한국 배드민턴협회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하는 사설을 내놓기도 했다. 안세영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떠올려보았다. 우선 성당에 스스로 찾아오는 청년들은 대부분은 교회 친화적이다. 사제와 본당 사목회에서 요청하는 부분에 귀 기울이고, 본당에서 정해진 규칙은 서로 독려하며 함께 지키려고 한다. 한 번에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대부분 받아들이고 교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까지 협조적인 것이 놀라울 정도로 요즘 성당의 청년들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교회의 일에 친화적이다. 개인적으로 안세영 선수의 발언이 반가웠던 건 변화를 향한 '나비의 날갯짓'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협회와 상의를 하지 않았고, 동료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등 여러 이유로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한 명이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교회는 목소리를 듣고 있을까? 분명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청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목소리는 힘이 없다. 청년을 주체적인 교회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가 청년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변화해야 한다. 모든 사목이 그렇지만 특히 청년에게는 시혜를 베푸는 듯한 지원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당한 교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함께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청년 신자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청년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 기쁜 발걸음으로, 교회로 찾아오도록 ‘섬김의 리더십’으로 그들을 품어야 한다. 2027년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교회다. 기록적 폭염에 휴가를 떠나는 것도 버거운 요즘, 세계청년대회 발대식에 참석한 청년들이 명동대성당을 가득 메운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차오른다. 청년과 교회, 변화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지만 청년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그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3년 후 전 세계 청년들을 한국 땅에 맞을 때는 청년이 주인공인 신앙 축제가 되어 청년들의 목소리가 더 힘있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박 체칠리아(수원교구 능평본당)

발행일 2024-08-18 제340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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